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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강의 이향은 교수 강연 '더 현대 서울의 탈바꿈' 특강

오늘은 백화점의 무덤이라 불리던 곳에 오픈한 한 백화점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백화점의 무덤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수식어를 가진 곳 과연 어디일까요? 바로 '여의도'입니다. 정말 화려하고 유동 인구도 많은 곳인데 도대체 여의도는 왜 백화점의 불모지가 된 걸까요?​여의도는 한국의 월스트리트라 불리며 한국 금융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죠. 그뿐 아니라 유망한 기업들, 또 국회 방송국 근무지가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로 꼽히는 대한민국 대표 업무지구죠. 1983년 12월 여의도가 한창 개발되고 지금의 모습을 갖춰가던 시점에 여의도 백화점이 오픈을 했습니다.​7,500평 규모였거든요. 매우 크죠. 문화센터, 화랑, 전시관 이런 것들을 두루 갖춘 최신식 쇼핑 시설이었죠. 여의도 백화점은 개점 후 채 2년도 되지 않아서 영업 적자와 또 건설 당시 무리하게 졌던 부채로 부도를 맞게 됩니다. 그리고 2010년대에 들어서기까지도 여의도에는 백화점이 하나도 들어서지 않는 그야말로 백화점의 무덤이 됐죠. 사실 여의도는 백화점이 들어설 만한 상권이 아닙니다. 여의도는 섬이죠. 그래서 다리를 통해야만 진입과 출입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시위나 행사가 있으면 일대의 교통이 마비되기 일쑤입니다.​게다가 여의도는 오전 7시쯤 생활인구가 유입돼서 오후 1시에 무려 14만 3천 명으로 여의도 주민등록 인구 3만 3천 명의 4배를 넘습니다. 하지만 밤이 되면 다 빠져나가고 4만 7천 명으로 수치가 뚝 떨어지게 됩니다.​주말의 유동 인구는 평일의 절반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백화점 운영에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할 수 있죠. 백화점은 보통 주말에 평일의 2배가 넘는 매출을 올리기 때문에 여의도에 백화점이 들어서면 그 매출을 포기해야 하는 셈입니다.​이런 조건 탓에 오랫동안 여의도에는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2021년 2월, 여의도에 새로운 백화점이 문을 열게 됩니다.2021년 초는 팬데믹으로 소비심리가 극도로 움츠러들었고요. 또 사회적 거리두기가 연일 강화되면서 사람이 많은 곳은 모두 피하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더 현대 서울이 개점한 당시 고객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습니다. 하루에 3천 건의 백화점 관련 게시물들이 올라왔습니다. 국제적인 인정도 잇따랐습니다. 전 세계 힙스터의 대표 매체로 자부하는 라이프스타일 잡지 모노클은 2021년 최고의 리테일 디자인으로 2백화 점을 선정했고요.​또 호평에 인색한 일본 언론도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일본의 대표 경제 전문지 닛케이 MJ는 굉장히 의미심장한 제목을 뽑았습니다.'한국 백화점 다움을 버리다' 왜 이런 평가를 하게 된 걸까요? 이름에서부터 기존의 공식을 과감히 깨고 더 현대 서울이라는 생소한 이름으로 손님을 맞았습니다.​이름부터 시작해서 이 공간 곳곳에서 기존의 한국 백화점다운 문법들을 모조리 깨뜨렸습니다. 일반적인 백화점에는 없는 게 있습니다.이게 뭘까요? 바로 유리창입니다. 지금까지의 한국의 백화점들은 고객의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기 위해 폐쇄적으로 공간을 만드는 것이 불문율이었습니다.​내부 공간과 쇼핑에 대한 몰입감을 높이기 위해서죠. 이 불문율을 먼저 깬 공간이 있습니다.파리의 봉마르셰 백화점. 창업자 부시코는요 백화점 건물과 공간 연출에 상당한 공을 들인 인물이죠. 그리고 부시코는 젊은 건축기사 에펠에게 이 천장을 유리로 만들어 달라고 의뢰합니다.​봉마르셰 백화점 등 여러 사례를 참고한 끝에 그동안 불문율처럼 여겨지던 금기를 깨고 빛이 들어오는 천창을 만들었습니다. 1층 입구에서부터 6층까지 건물 천장을 통해서 내려오는 자연 채광을 맞을 수 있도록 설계를 한 건데요. 덕분에 고객들은 이 유리 천장을 통해서 들어오는 볕을 쬐면서 낭만적인 쇼핑을 할 수 있습니다.​소비자가 꼭 물품을 사기 위해서 백화점을 찾는 것이 아니라 특별하게 살 것이 없더라도 들어가서 머물면서 시간을 쓰면서 되도록 오래 이 백화점에 머물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전체 면적 중에 절반만을 매장으로 사용하고 나머지는​정원이나 광장과 같은 휴게 공간으로 채우는 정말 파격적인 시도를 단행했습니다.과거 백화점의 타깃 고객은 47세에서 55세 주부로 설정을 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는데요. 더 현대 서울은 최근 시장의 압도적인 화두가 된 세대, MZ세대에 주목했습니다.이것도 외면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대학 내일 조사에 따르면 MZ세대가 백화점에 방문한 비중은 60%를 웃도는 반면 거기에서 구매까지 한 경험은 46%로 방문 대비 구매 전환율은 좀 낮은 편입니다. 그러니까 백화점에서는 구경만 하고 구매는 막상 온라인이나 모바일로 하는 바로 쇼루밍 경향이 있기 때문인데요.​바로 트렌드를 생산해내는 집단이라는 겁니다. MZ가 선호하는 곳이 핫플레이스로 자리를 잡으면 정말 빠르게 입소문이 나고요. 자연스럽게 다른 세대의 발길도 늘어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공간에서 정말 가슴 설레고 어떤 장소에 가고 싶어 할까요?​이곳은 나의 공간이 다 자기 정체성을 투사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원합니다. 저는 이런 공간을 페르소나 공간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페르소나 공간은 개인의 취향, 흥미, 가치관, 또 라이프 스타일을 만족시킬 수 있게 기획된 공간이자, 더 나아가서는 고객이 공간에서 자신의 취향 등을 발견할 수 있도록 자극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페르소나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중요할까요? 바로 빈 곳입니다. 백지가 있어야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듯이 여백이 있어야만 고객이 자기 스스로 페르소나를 투영할 수 있는 여지를 줄 수 있습니다.​1천 평이 넘는 진짜 숲을 구현했습니다. 가짜 나무가 아니고요 이곳에는 4m 이상의 실제 나무, 그리고 두세 개 층을 가로지르는 12m 높이의 폭포, 바위 이런 방대한 스케일의 외부 자연물들을 안으로 끌고 들어왔습니다. 왜 이 빈 곳을 숲으로 채운 것일까요? 최근에 mz세대들이 사랑하는 트렌드 중의 하나는 러스틱입니다.러스틱이란 자연스럽고 자연 친화적인 것을 선호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이 공간에 들어서면 일상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을 보면서 탁 트인 숲에서 산책하는 기분을 즐길 수 있게 됩니다. 이 고객 경험을 먼저 고려해서 공간을 만들고, 그다음에 거기에 상품과 브랜드를 맞춘 것이죠.​매출이라는 효율성보다 고객 경험이라는 유희성에 초점을 둠으로써, 하나의 콘셉트를 일관되게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경험을 선사하는 페르소나 공간을 만든 겁니다. 과거와 비교되는 현대사회의 특징은 아주 다양하죠. 가장 중요한 변화를 꼽으리라고 하면, 개인이 중요해졌다는 점입니다.​우리가 자신을 규정하는 정체성이 중요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 정체성을 반영할 수 있는 페르소나 공간에서, 자신과 동일시할 수 있는 취향으로 소비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겁니다. 그리고 이런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경영 구조, 또 공간 구조와 같은 공식 틀을 깨뜨려야 합니다.'임원'이 모르는 것으로만 채워라! 상명하복으로 묘사되는 한국의 대기업 문화, 그것도 군기가 세기로 유명한 유통업계에서 이러한 상향적 의사결정이 가능했다는 것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죠. 그것도 실험적인 작은 프로젝트가 아니라, 기존 백화점 대비 설계비만 5배가량이 소요된 초대형 프로젝트에서 말입니다.​이러한 현상은 현대 경영에서 꼭 필요한 변화의 요건이 되었습니다. 소비자 트렌드가 종잡을 수 없이 다변화되고, 또 거침없이 빠르게 변화하는 오늘날과 같은 환경에서는, 이 위임이라는 게 공식을 깨는 하나의 혁신이 되기도 합니다.

  • 이향은 강사
  • 2023-08-29
이지선 교수 강연 '지선아 사랑해' 강의 특강

안녕하세요. 강연전문기업 호오컨설팅 입니다.이번에 소개해드릴 명사특강 강연은 <지선아 사랑해> 저자 이지선 교수님의 인생 스토리를 통한 삶의 자세를 돌아볼 수 있는 '지선아 사랑해' 영상을 준비했습니다. 이지선 교수님은 동기부여, 삶의자세, 문학, 행복, 힐링 분야 관련 강연으로 많이 진행을 하십니다. A.그때 이야기를 조금 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평범했던 일상이 이제 순식간에 바뀐 사고가 좀 있었죠.이지선 교수님.제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고요.오빠를 이제 저희 친오빠가 옆 학교에 다녀서 이제 오빠의 작은 차를 얻어타고 이제 그날도 늘 만났던 시간에 만나서 늘 다니던 길로 가던 중에이제 신호등이 바뀌었어요.빨간 불이 들어왔으니 오빠도 차를 세웠고 이제 내일 뭐 할 거야 이런 일상적인 대화를 하고 있던 중에 뒤에서 이제 음주운전하신 분이이미 이제 작은 사고를 내고 도망을 가면서 좀 빠른 속력으로 달리고 그대로 이제 신호 대기선 제일 뒤에 서 있던 저희 차를 와서 들이받게 되면서다른 6대의 차와 부딪히다가 차에서 불이 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이제 그 불이 제 몸에 먼저 붙었고 오빠가 이제 저를 꺼내면서 오빠도 화상을 입었고, 티셔츠 벗어서 불을 꺼주고 응급실로 가게 됩니다.그때 저는 사실 기억이 거의 없는데요.이제 오빠한테 들은 얘기로는 의사분들이 "이제 동생이 화상이 문제가 아니다 지금 뭐 맥박도 안 잡히니 곧 갈 것 같다.그래서 빨리 작별 인사 지금 해라"오빠가 저한테 "좋은 동생이었다. 잘 가." 이렇게 했는데 아직까지 안 가고 이렇게 인사는 받았지만 잘 있습니다.초반에는 그냥 꿈을 꾸고 있다.계속 그렇게 생각 뭔가 이제 제가 중간에 있고 사람들이 저를 자꾸 이렇게 둘러보고 있다는 그런 느낌은 있었어요.그러다 이제 의식이 돌아오고 그때는 이제 뭐 서석기를 끼고 있고 하니까 말도 못하던 때여서제가 발로 이제 침대 위에 이렇게 "여기 어디야?" 이렇게 이제 엄마가 면회에 들어오셨을 때는 엄마가 이제 그때 설명을 해 주셨어요."사고가 있었고 지선이가 많이 다쳤어"사고 열흘째 되던 날 첫 수술을 받았는데, 첫 수술은 화상을 입고 나면 이제 피부가 상한 피부를 걷어내는 수술이었더라고요.저는 "이제 드디어 이제 첫 수술을 받는다"이러면 보통의 수술을 받고 나면 나아지잖아요.이제 분명히 나아지는 과정에 필요한 수술이었지만 이제 상한 피부를 걷어내고 나니까 감각이 살아나면서 일단 통증이 어마어마한 거죠.피부가 없는 상태가 되니까요.그래서 또 감염을 막아야 하니까 계속 소독을 받아야 했고 아주 지옥에서나 들릴 법한 소리가 이런 소리일까이제 저 말고도 다른 환자분들 많으시니까요.제가 이제 치료받던 중에 이제 붕대를 다 풀어놓은 상태에서 제가 머리 뒤가 조금 찢어졌었어요.그래서 이제 실밥을 뽑을 때가 돼서 저를 이렇게 살짝 앉혀놓았는데 그때 제가 화상 입은 부위가 눈에 이제 들어오게 되는누워서는 사실 제가 제 몸을 볼 수가 없잖아요.그때 보게 된 게 이제 태어나서 처음 본 장면이었죠.그래서 제 다리에 이 살색이라고 부르는 피부가 없는 상태를 보게 되고 "내가 살 수 없는 상황이구나"이제 그때 좀 직감을 하게 됐죠.그때서야 제가 이제 그런 상태를 보고 와서 "엄마, 내가 살 수 있는 상황 같지가 않아. 그래서 우리 마음의 준비하자"왜냐하면 그 당시에 중환자실에서 제 옆에 환자분들이 돌아가시는 걸 제가 밤마다 보고 있었기 때문에"나도 오늘 밤에 엄마랑 지금 낮에 이렇게 얘기하지만 밤에 갈 수도 있다"그랬는데 저희 엄마가 "너 다시는 상처 보지 않겠다고 약속하자고 하시면서 그냥 다시 제 입에 막 밥을 막 밀어넣으시면서 기도하셨어요.이게 지선이 살이 되고 피부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면서 제가 그런 엄마를 보면서 그 밥을 받아 먹으면서"살아서 나가야겠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 마음으로 지지 말자" 그 생각을 하게 됐고그래서 그 당시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픈 거 찾는 거, 밥 먹는 거 그거 열심히 했어요.그래서 살아남아서 살아서 중환자실에 나오게 됐죠. Q.지금에야 이렇게 담담하게 얘기를 하시지만 이게 사실 말씀하신 두 가지만 하자라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것 같습니다.오늘 이렇게 우리 가족분들도 이렇게 오셨는데, "지선이의 살이 되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를 하셨다고 했는데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A.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었으니까요.그리고 엄마가 낙심한 얼굴을 보이는 거는 안 될 것 같아서 그게 이제 기도가 모든 걸 좀 감추는 그런 역할도 했었고, 그냥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죠."엄마 인생이랑 내 인생이랑 바꿀 수 있으면 엄마가 좀 바꿔줄 수 있냐"고 자면서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울었는데제가 "바꿀 수만 있으면 천 번이고 만번이고 엄마는 바꿔주지" 그랬어요.그리고 제가 눈물이 나서 이렇게 더 이상 그 뒤엔 말을 못하겠는 거예요.참 가려워하고 아파해요. 막 치료를 받고 나와 있으면 이 아픈 거를 다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이를 다 떨어요."내가 천 번이고 반번이고 바꿀 수만 있으면 바꿨으면 좋겠다. 해줄 수 있다" 이 소리를 했었죠. Q.가족분들께서 교수님 앞에서는 절대 울지 않으셨다고 하셨는데, 좀 여쭈어볼 수 있을까요?이지선 교수.네 맞아요. 저희 엄마가 우선 너무 씩씩하셨고요.제 앞에서 그냥 엄마가 늘 제 중환자실에서부터 "괜찮아. 괜찮아. 지선이 괜찮아." 이 눈빛이었기 때문에 저는 진짜 제가 좀 괜찮은 줄 알았어요.근데 그게 사실은 굉장히 큰 힘이 됐고 그 뒤에 한 제가 7개월을 병원에 있었는데 친구들이 찾아올 때마다 저는 이제 나중에 알았어요.이 친구들이 들어갈 때 이제 문 앞에서 서로 막 "울지 마. 울면 안 돼"이렇게 서로 다짐을 하고 들어와서 자기들이 눈앞에 보이는 제 모습이 아니라 그냥 원래 고등학교 때 만났었던 그때로 돌아가서그 옛날에 저를 똑같이 대해주면서 그냥 깔깔거리고 웃으면서 농담하고 그래서 제가 그때 친구들 올 때마다 참 즐거웠고또 그렇게 또 웃는 게 진짜 사실은 고통을 참 이기잖아요.그래서 잘 회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아버님께 이런 얘기를 하셨다고 그래요."혹시나 그 사고를 낸 그 사람이 찾아오면 그냥 용서했다"고 말해 달라고요.이지선 교수.중환자실에서 저희 아버지가 들어오셔서 사고 설명을 해 주셨어요."보통은 상황이 이러면 합의해 달라고 찾아온다는데 아무도 안 온다"그래서 그냥 그때 제 마음에 "혹시 찾아오면 용서한다고 말해줘" 이렇게 했는데제가 이미 제게 닥친 고통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사실은 누군가를 미워하고 분노하는 감정도 정말 견디기 어려운 거잖아요.그래서 적어도 그것만큼은 피할 수 있도록 그냥 신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합니다. Q.그 당시 그 가해자는 어떻게 됐었어요? 이지선 교수.아마 법에 따라 처벌을 받으신 것 같긴한데, 오지 않으셨어요.그래서 저도 뉴스에 나온 대로 성씨만 알고요.물론 사람마다 다 각자 다를 거예요.이게 꼭 그게 필요한 상황도 있고 누군가를 보고 나면 사실은 어떤 관계가 생기고 나면 이게 정말 잊을 수 있었을까 그 생각이 드는 거예요.어떻게 달라질지 이거 알 수 없는 거거든요.그런데 그냥 실제로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었기 때문에 그냥 우리가 잊고 살았어요.그래서 사실은 이런 질문 받을 때, "그래 가해자가 있었지" 약간 이런 느낌이에요.그래서 적어도 그 부분만큼은 잊어버리고 그냥 제가 저 살아남는 것, 제가 회복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었던 그 힘을 모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7개월 정도 후에 이제 퇴원을 하셨다고요. 이지선 교수.그런데 제가 적어도 병원에 있는 동안은 수술을 받으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어요.저희들이 피부는 갖게 되었지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모습으로 이제 집에 돌아갔고 그때부터 사실은 또 다른 어려움의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새로운 저를 받아들이는 과정 그게 참 힘들었던 것 같아요. Q.어느 날은 거울을 보시다가 "안녕 이지선" 이라고 하셨다고 이지선 교수.처음에는 제가 숟가락 같은 데 이제 비친 얼굴을 보게 됐고, 눈썹도 없고 그냥 외계인 같다.그게 저의 첫 느낌이었어요.그래서 "나 아닌데 나 이렇게 안 생겼는데" 하면서 제가 본 모습을 막 잊으려고 했었는데그때 이제 보이게 된 것이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에 빛이었어요.너무 달라진 모습을 하고 있는데도 저의 그 피부를 보는 게 아니라,내가 원래 사랑했던 내 동생, 내 딸, 내 조카 그 눈으로 바라보는 그분들의 눈을 보게 됐어요.그래서 "이 사랑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그 생각을 하게 됐고 그러면서 이제 저도 거울 앞에 이제 용기를 내서 서게 됐죠.근데 처음 보는 분이신 거예요. 그래서 사람 처음 만나면 우리 인사하잖아요.그래서 저도 그래서 "안녕 이지선" 이러고 쓱 지나가고 또 보고 또 인사하고 자꾸 보면 정 들잖아요. Q.이후에 인간극장 <지선아 사랑해> 편과 에세이 <지선아 사랑해> 를 출간하게 됩니다.이지선 교수.제가 처음에는 TV 나가고 이렇게 하는 거에 대해서 걱정들이 많으셨어요.저희 가족들도 실제로 길에 나섰을 때 저를 막 구경하시고 막 정말 막 보고 놀라시는 분들 그런 눈빛들이 참 많았어요.그냥 제 주변에 제가 그 당시에 제일 듣기 싫었던 소리가 혀차는 소리였거든요.이제 그거를 전국에 네가 tv로 나갔을 때 그 눈빛을 너가 받는 게 싫다는 거예요.저는 한편으로 이렇게 지나면서 보니까 어떤 분들은 이렇게 길을 지나가셨어요.생각해 보니까 너무 특이해서 다시 보고 싶으면서 아닌 척하고 돌아와서 다시 오기도 하고 막 그러셨었거든요.근데 이런 분들이 두세 번 보고 나면 이제 자기 호기심이 이제 해결되고 나면 와서 더 보지는 않거든요.그래서 제발 이제 tv로 저를 좀 자세히 보시고 길에서 만났을 때 그냥 좀 편안하게 지나가 주시길또 한편으로 내 삶에도 희노애락이 있으니 당신의 삶처럼 그렇게 너무 특별하게 여기지 말아주시길그래서 사실은 제가 좀 살기 편해질 수 있겠다그런 기대로 tv에 나가게 되고 그냥 조금 더 나아가서는또 다른 지선이들이 그냥 세상에 좀 나왔을 때저를 보고 갖게 된 어떤 이해의 폭이 또 다른 누군가들에게도그렇게 지선 씨처럼 그렇게 오늘을 잘 살아가고 있구나 좀 그런 눈빛으로 바라봐주기를 하는 마음으로 세상에 나갔죠. 사고를 당했다'가 아니라 '사고를 만났다' 이렇게 표현을 좀 하신다고 그래요. 이지선 교수.어느 날부터 당했다는 표현이 조금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제가 사고를 당했다라고 말할 때마다 제 자신을 제가 저는 음주운전 교통사고의 피해자예요.이렇게 설명하고 있는 것 같은거예요.그런데 피해자로 살고 싶지 않았고 또 돌아보니 제가 마냥 피해자로만 살지는 않았더라고요.잃은 것도 많았지만 얻은 것도 참 많았어요.보이지 않지만 훨씬 더 중요한 것들을 많이 얻게 됐고 그래서 저 스스로 그냥 말을 바꾸자 그래서 '사고를 만났다' 그랬어요.제가 반갑지 않은 거지만 만난 건 만난 거잖아요.'제가 만났다'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제가 이 사고와 이 나쁜 일과 헤어지기 시작한 것 같아요.그래서 우리가 그런 불행들을 만났을 때 자기 자신에 대해서 좀 다시 쓰기하는 게 좀 필요한 것 같아요.제가 그 다시 쓰기를 할 수 있었던 힘은 주변 사람들이 저를 새롭게 봐주는 환자가 아니라, 장애인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로 봐주는그 힘이 결국 제가 피해자로 살지 않고 다시 이지선으로오늘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오늘살이 이지선으로 이렇게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셨던 것 같아요. Q.지금 어딘가에서도 갑작스러운 또 일들로 좀 힘들어하시는 분들에게 좀 전하고 싶은 얘기가 좀 있으시다면. 이지선 교수.어려운 일들이 예기치 않은 정말 꿈에서조차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어떤 일들이 우리 일상 속에서 일어나기도 하는데,우리가 그 일과 잘 헤어질 수 있다.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지금 당장의 모습은 내 상황이 보이는 상황들은 아무하고 절망적일지라도우리 인생이 결코 비극으로 끝날 것이지 않을 것이다.꽤 괜찮은 해피엔딩 동화에서처럼 왕자와 공주가 만나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그런 해피엔딩은 아닐지라도 꽤 괜찮은 해피엔딩이 우리 인생 앞에 있을 것이다.그런 기대감.그게 결국은 희망의 힘이고요.그래서 그 힘으로 오늘을 또 하루를 또 하루를 그렇게 살아나가시다 보면 이게 분명 그날이 올 것이다라는 기대를 가져주셨으면 좋겠고그 마음에 좀 의구심이 드는 날이 오시면 그때 저를 좀 떠올려봐 주시면 어떨까?그래 저런 인생도 있더라. 그 당시에 저는 다들 아마 그랬을 거예요.저 사람 인생 끝났지 무슨 미래가 있겠어라고 했을 텐데 다 망가진 것 같아도 오늘이 있거든요.그래서 우리 인생이 꼭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더라도 우리 인생이 꽤 괜찮다 내 인생도 꽤 괜찮을 것이다 그 마음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이지선 교수님의 유퀴즈 영상 잘 보셨나요? 이지선 교수님의 강연 뿐만 아니라, 수많은 스타강사 명사특강 강연이 궁금하시면??

  • 이지선 강사
  • 2023-08-29
최태성 강사 강연 '조선은 왜 망하였는가?' 인문학 강의

주제의 시작인 "조선은 왜 망하였는가?"라는 질문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주제입니다. 조선의 몰락에 대해 깊게 고민해본 적이 있는가요? 특히나 그 중요한 시점, 1910년 8월 29일, 이 날은 조선의 통치가 공식적으로 끝난 날입니다. 그 날이 어떠한 모습이었을지,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와 함께, 그 히스토리의 중요성을 함께 고찰해보려 합니다. 조선은 1392년부터 대한제국이 세워질 때까지, 대략 500년 가까이의 긴 역사를 가진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성리학, 즉 유학의 일종을 기반으로 한 문화와 철학을 중심으로 통치되었습니다. 성리학은 사회의 계층과 서열을 정의하는 철학으로, 무엇이 정통인지, 어떤 것이 그렇지 않은지를 구분하였습니다. 이 철학은 사회의 안정을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을 중시하였습니다.​중국과 조선, 임금과 신하, 양반과 천민, 남자와 여자 등, 성리학에서는 각각의 쌍에서 어느 하나를 정통으로 보았습니다. 이러한 성리학적 사고는 조선 사회의 모든 층에 깊게 뿌리를 내렸습니다. 외교 측면에서 조선은 '사대' 체제를 통해 큰 나라인 중국을 섬기는 방향으로 통치하였습니다. 이는 성리학 철학 내에서 중국을 섬기는 것이 옳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조선은 기본적으로 농업 중심의 사회였으며, 농사를 지어야 하는 백성들의 노력 덕분에 국가가 유지되었습니다.​500년의 역사를 가진 조선이 그동안 유지된 이유는 그 안에 단단한 체제와 시스템, 그리고 백성을 아끼는 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근대화가 시작되며 세계는 큰 변화를 맞이하였습니다. 자본주의, 평등, 자주적 국가라는 근대 사회의 원칙들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조선은 이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웠습니다.조선의 사회 체제는 여전히 농업 중심이었고, 자본주의와 평등의 원칙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신분제 체제가 계속 유지되면서 근대 사회의 평등 원칙을 수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변화와 맞물리지 못한 결과, 조선은 근대사회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였습니다.​1930년대, 전라도 광주 지역에는 여러 선교사들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선교 활동을 전개하면서 그 경험과 발견들을 선교 보고서에 담아냈습니다.​특히 광주 양림동에서의 경험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선교사들은 양림동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이 인터뷰 중에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1930년대라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절에도, 인터뷰를 받은 500명의 여성 중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여성은 겨우 50명 미만이었습니다.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을까요? 그 당시의 사회적 관점에서 여성은 이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름은 사회적 관계를 맺기 위한 도구로써 중요하게 여겨졌지만, 여성은 그 당시 사회에서 주로 가정 내에서의 역할에 집중하게 되어 이름이라는 개념이 중요하지 않았던 것입니다.​1930년대의 조선 사회는, 일제 강점기를 넘어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500년 동안의 전통과 관행이 깊게 뿌리박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변화와 발전은 느리게 이루어졌고, 이는 조선의 외교 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조선은 명나라와 청나라와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그 시절, 조선은 외세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운명을 그들에게 의존하며, 자국의 문제점들을 외부의 힘을 빌려 해결하려 했습니다. 이런 의존적인 태도는 1876년 개항 이후에도 계속되었으며, 이를 대표하는 사건으로는 1882년의 이모군란이 있습니다.조선은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청나라에게 도움을 청하며 sos를 보냈습니다. 이런 상황은 갑신정변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조선의 역사와 정치, 사회 구조는 500년 동안 성리학을 기반으로 운영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동력을 잃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조선은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그 결과 1910년 8월 29일에 한일 강제병합조약이 발표되면서 대한제국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은 그의 나라가 멸망하는 순간에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는 "우리는 이제 허약해졌다"라며 일본에게 운명을 맡기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조선의 문화와 전통, 그리고 세계사에서의 위치는 무척 중요했지만, 순종 황제의 결정은 내부와 외부의 다양한 압박과 변화하는 국제적 환경 속에서 힘겨운 선택이었습니다.일본에 의한 조선의 병합은 많은 한국인들에게 큰 상처를 안겼습니다. 독립을 위한 노력들이 펼쳐졌지만, 일본은 그러한 움직임을 강압적으로 진압하였습니다. 3.1 운동은 그런 노력 중 하나로, 한국인들의 독립 의지와 국가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조선이 일본에 흡수된 것은 단순히 군사적, 정치적 약점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사회 구조와 체계,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조선을 움직였던 가치관과 철학이 현대화와 국제화의 파도 속에서 적응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도 큰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선교사들이 광주 양림동에서 경험한 사실은 그 당시의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와 가치관을 대표하는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시절 여성의 정체성과 가치는 주로 가정 내의 역할과 관련되어 있었으며, 그로 인해 여성 스스로의 개인적인 정체성과 가치를 인식하고 부각시키는 것이 어려웠습니다.​오늘날 우리가 이러한 역사를 돌아보며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많습니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며, 그러한 과거의 오류와 배운 점을 통해 미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과거의 순간들에서 배운 교훈을 현대의 삶에 적용하며,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 최태성 강사
  • 2023-08-29
장동선 박사 '늙지 않고 젊게 사는 미래?' 특강

여러분께서 저희 채널에서 특히 많이 사랑해 주셨던 영상 중 하나는 "노화의 종말"과 관련된 주제였습니다. 그 영상에서는 인간이 늙지 않고, 길게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다루었죠. 그 주제에 이어, 오늘은 "영 노하 젊게 오래 사는 미래"라는 책을 추천하고자 합니다.​이 책의 저자는 과학자, 의사, 기술 전문가 중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 투자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비전을 그려낸 투자자의 말에는 더 큰 믿음이 가기도 합니다. 실, 저는 과학자로서 때로 먼 미래의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하지만 예측된 미래가 언제 현실로 다가올지는 항상 불확실하죠. 반면 투자자는 자신의 돈을 투자하고, 그 투자를 통해 얻은 이익을 회수하려고 합니다. 그만큼 그들의 예측은 현실적이고 실용적일 확률이 높습니다.​세르게이 영이라는 투자자는 '장수 비전 펀드'를 주도하고 있는데, 이 펀드는 인간이 더 길게, 그리고 젊은 몸 상태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투자를 진행합니다. 그가 왜 노화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의 근거로, 다양한 생명체들이 어떻게 오랜 시간 동안 생존하는지 연구했다고 합니다.예를 들어, 백합조개는 500년, 북극고래는 200년 이상 살 수 있습니다. 이들 생명체가 어떻게 이렇게 길게 생존하는지, 그들의 유전자와 기타 요소는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는 많은 과학자들의 관심사였습니다. 야마나카 신야와 존 걸든 등의 연구자들은 노화 연구를 통해 노벨상을 받기도 했습니다.특히, 실험을 통해 특정 노화 인자를 조절하면 노화 프로세스를 역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노화의 원인과 메커니즘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과학자들은 노화의 원인에 대한 다양한 이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데이비드 싱클레어는 후성 유전체의 손상이 노화의 주된 원인이라고 주장하며, 오브레이드 그레이는 분자 레벨에서의 축적된 손상이 핵심 원인이라고 이야기합니다.​물론, 이러한 노화 메커니즘을 완벽히 이해하고 극복하는 것은 아직도 과학의 숙제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과 연구의 끊임없는 진행으로, 우리는 점점 그 해답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과학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그리고 그 발전이 우리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아보면, 인공지능 기술의 도움으로 새로운 약 물질과 치료법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학적 발전은 노화와 관련된 병의 예방 및 치료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어, 더 길고 건강한 생활을 가능하게 합니다.​또한, 나노 기술, 유전체 편집 기술(CRISPR) 및 줄기세포 치료법과 같은 첨단 과학 기술이 병원과 연구실에서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전통적인 의학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런 기술들이 실제 의학 분야에서 적용되기 시작하면, 노화와 관련된 다양한 질병 및 증상의 치료와 예방이 더욱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물론, 이러한 과학적 발전과 연구들이 노화를 완전히 멈추게 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현대의 과학과 기술은 우리에게 노화와의 전쟁에서 새로운 전략과 무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과학자와 연구자들의 노력과 진지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래의 인간은 현재보다 훨씬 더 긴 생명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결론적으로, "영 노하 젊게 오래 사는 미래"는 이러한 과학적 변화와 발전을 근거로 노화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비전을 제시하는 책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노화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리고 과학과 기술이 우리의 생명을 어떻게 연장시켜 줄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물론, 기술의 발전은 우리가 상상한 것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메틴 시티 박사 연구팀이 2020년에 개발한 마이크로 로봇은 그 예 중 하나입니다. 이 로봇은 적혈구 크기로 우리 몸 속에서 다양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초소형 카메라를 통해 혈관 내부의 이미지를 캡처하거나 특정 부위에서 조직을 잘라내는 수술을 하며, 필요한 위치에 정확하게 약물을 분비하는 등의 역할을 합니다.이러한 기술의 등장은 인간의 수명과 건강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며, 동시에 다양한 윤리적, 도덕적 문제도 던져집니다. 예를 들면,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러한 기술을 활용하여 더 오랜 시간을 살 수 있다면, 그로 인한 사회 구조의 변화나 빈부 격차의 확대와 같은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기존의 스타나 유명인들이 계속해서 그 위치를 지키게 된다면, 신진 세대는 그들에게 도전하거나 새로운 기회를 얻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길어진다면, 그로 인해 사회 제도나 경제 구조에 큰 변화가 필요할 것입니다. 연금 제도의 개편, 일자리 창출, 정년 연령의 변경 등 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도출될 것입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술 발전의 효과를 최대한 활용하며 동시에 그로 인한 문제점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현명하게 노화하는 것, 즉 기술을 이용하여 더 건강하게 살면서 동시에 사회적, 윤리적 문제에 대한 고민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 장동선 강사
  • 2023-08-25
사회자 MC 섭외 손미나 작가 동기부여 특강 '최소한의 돈으로 최대한의 행복을 누리는 법' 강의 강연

안녕하세요. mc섭외 강연전문기업 호오컨설팅 입니다.이번에 소개해드릴 강연은 손미나 작가 (전 KBS 아나운서) 의 '최소한의 돈으로 최대한의 행복을 누리는 법' 영상을 준비했습니다.손미나 작가님은 전 KBS 아나운서를 시작으로 여행작가로도 활동을 하고 계시며, 열정, 도전, 멘토링, 삶의자세, 자기성찰, 여행, 동기부여 분야 관련 강연과 MC섭외로 행사 사회를 많이 진행하십니다. Q.kbs에서 굉장히 유명한 아나운서로 활동을 하시다가 퇴사했던 게 되게 이슈가 됐었어요.퇴사 이후에 언론사의 편집인, 인생학교 교장, 작가, 소설가, 회사 대표 이런 여러 활동들을 하셨는데 사실 이런 여러 활동 의미 있는 일들을 하셨지만 이게 경제적인 부분이 또 뒷받침이 안 되면 지속이 안 되는 거잖아요.그래서 이제 좀 여러 가지 커리어적인 작가님의 그런 부분을 여쭤보고 싶은데 처음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나셨을 때는 회사에서 지원을 받아서 가신 거예요? 손미나 작가.제가 저축을 했던 걸 가지고 가서 석사 과정을 밟았어요.그때 회사에서는 이제 스페인으로 유학을 가는 케이스가 처음이라 그런 걸 해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았고요.제가 만약에 영어권 나라를 선택했으면 지원을 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저는 스페인어권으로 가고 싶었거든요.그래서 제가 그냥 저축한 거 가지고 갔어요.부 모님이 어떡할 거냐 그거 나중에 뭐 시집도 가야 되고 여러 가지 비상금도 있어야 되는데 다들 그래서 못 깨잖아요. 그거 혹시 필요할까 봐 그래서 그냥 제가 또 벌죠.일단 지금 이 기회는 아무리 돈을 많이 주고도 살 수 없는 기회니까 이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잖아요.지금 만약에 내가 30살인데 지금 도전하고 싶은 게 있다.근데 통장에도 어떻게 보면 할 수 있는 저축한 게 있는데 혹시 만약을 위해서 필요할까 봐 이거를 못 깨고 5년을 지나갔어요.돈이 이제 그때 가서 생각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진짜 중요한 게 뭔지 아세요?그 어느 순간에도 '나는 지금 넉넉해서 이제 그걸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 못 해요.아무리 돈이 있어도 그게 돈의 함정이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오해를 하실 수 있는데 저에게 뭐가 넉넉하게 많아서 간 게 아니고저는 기꺼이 이것을 희생해서라도 이 시간을 더 소중하니까 이걸 붙잡겠다는 의지가 있었던 거고그리고 사실은 있는 거 안에서 쓸 줄 알면 돈이 많이 필요 없어요.저한테 어떤 일이 있었냐면 대학교 때 이제 호주에서 그때 이제 교환학생을 갔어요.교환 학생은 한국 학비를 내면 그걸 가지고 그 호주에 있는 대학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거였어요.그리고 생활비가 워낙 쌌어요. 그 당시에 잘 지냈는데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하면서 이제 돈을 아무리 모아봤자 거기서 제가 마드리드에 가서 어학연수를 하고 싶었는데 비행기 값이 너무 비싼 거예요.200만 원 정도 했어요. 워낙 멀잖아요.어느 날 학교에 가보니까 게시판에 마드리드 국립대학에 가서 여름 학기를 듣는 사람들은 학생 할인가 티켓을 살 수 있도록 해준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왕 가는 김에 저런 코스도 듣고 비행기표도 싸게 사고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구나' 이러면서 제가 그 티켓을 덥썩 사버렸거든요.그리고는 이제 막 조합에서 준비를 해가지고 이제 유학길에 올랐어요.알고 봤더니 몇 번을 갈아탔는지 수도 모르겠네요. 하여튼 기내식을 9끼를 먹었어요.지금 같으면 못할 수도 있어요.정말 그때는 이 언어를 배우고 스페인에 가서 살아보고 싶다는 그 의지가 너무나 강했기 때문에 전혀 중요하지 않았고 해야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으면 방법을 찾아서라도 할 수 있고그리고 아무리 지금 나에게 있는 어떤 재정적인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이 시간은 정말 돈 주고 살 수 없다는 거 내 젊음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이 기회 이게 돌아가 버리면 다시 살 수 없다는 거에 대해서 저는 더 방점을 두는 사람인 거예요.모두가 그렇게 하셔야 된다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저는 그런 철학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손미나 작가.제가 그때 9시 뉴스도 진행하고 있었고 유명한 프로그램들의 mc였는데 내려놓는 그걸 내려놓는 게 어려운 거죠.사람들은 사실은 나 지금 뭐 통장에 돈이 얼마 없어서 뭐가 어째서 다른 이유를 대지만 갖고 있는 것에 대해 그게 두려워서 그걸 못하는 건데그런 현상이 왜 생기냐면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게 난 줄로 착각하기 때문이에요. 제가 9시 뉴스를 하고 있었다고 해서 제가 9시 뉴스 아니잖아요.그건 그냥 제가 잠시 하고 있었던 뉴스일 뿐이고 그건 언제든지 또 앉을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걸 '나' 라고 동일시시키지 않으면 내려놓는 게 쉬워져요.이렇게 되려면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돼요.Q.스페인에 다녀오셔서 이제 결론적으로는 휴직이 아니라 이제 진짜 그만두셨잖아요.그만두시고 여행을 떠나셔서 여행서 에세이 소설을 내시면서 파리에서도 3년 동안 살아 가기도 하셨고 이 기간 동안은 거의 한 7년 정도인데 여행을 다니면서 다른 경제적인 활동을 하셨던 거에요? 손미나 작가.책을 쓴다는 게 물론 전업 작가처럼 살았지만 그와 관련된 여러 가지 다른 활동들을 했어요.예를 들면 유럽에 살았으니까 한국에서 기업들하고 콜라보를 해가지고 여기에 있는 기업들이 어떤 브랜드 같은 걸 런칭을 하거나, 프로모션을 할 때, 스토리텔링이 필요할 때 저한테 연락을 하면 제가 유럽에서 리서치를 하고 자료 조사를 하고 공부를 해서 거기에 필요한 자료를 글로 만들어 드리기도 하고, 잡지나 이런 데 기고를 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방송에서 저를 촬영하기 위해서 한국에서 오시기도 하고, 해외에서의 방송에 출연하기도 하고 저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어요.  Q.이 책이 40만 부가 팔렸다고 합니다. 손미나 작가.너무너무 감사한 일이죠. 그리고 진짜 이 책이라는 것이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구나 용기가 될 수 있구나 그런 걸 제가 느껴서 진짜 감사한 순간들이 많았던 것 그리고 신기했죠.이렇게 많이 사람들이 사서 본다는 게 전혀 예상을 못 하셨어요.제가 이 책을 쓴다고 하니까 저희 주변에 있는 아나운서 선배들이 '야 나도 다 해봤어. 그거 아무도 안 사' 라고 책은 팔아봤자 몇 권 안 되니까돈도 안 되고 힘 정말 많이 들고 고생만 한다고 빛이 나지 않는데 고생을 하는 일이라 이거예요.그래가지고 자꾸 저를 말리더라고요.그래서 저는 사실 뭐 그런 거를 제가 원했으면 하지 않았을 텐데 이거 사연이 좀 있는 게 스페인에서 제가 유학을 하고 돌아오니까이 책을 내자라고 제안을 많이 받았고 어떤 분들은 막 여기다가 제 얼굴을 이렇게 크게 표지에다가 넣자고 하시고,어떤 분들은 심지어 손미나의 스페인 골든벨이라고 하자 막 이런 제안도 하시고 했는데 제가 그때 느낀 거는 나는 글을 만약에 쓴다면 '진짜 글을 쓰고 싶다'라고 생각했어요.진짜 이야기 사람들을 현혹시켜서 유명한 사람이니까 내가 방송국에서 일하고 그걸 통해가지고 책을 많이 판다.그런 거는 정말 내가 문학을 공부하고 이 언어를 좋아해서 이 문화를 흡수하고 이렇게 한 사람 입장에서 할 짓이 아니다.그래서 제가 제안을 했어요.'표지에서 제 얼굴을 뺍시다. 표지에서 제 이름을 뺍시다'그리고 끝까지 모든 교정과 감수는 제가 보는 게 조건이었어요.글이 아무리 부족하더라도 제가 하겠다. 아무도 건들면 안 된다해서 출판사에서는 마케팅을 해야 되는데 기절했죠.그랬지만 어쨌든 그중에 이 보물 같은 출판사를 찾았고 '우리는 상관없습니다. 좋은 책을 내는 게 우선입니다'라고 해서이분들과 이제 계약을 했기 때문에 정말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그냥 일기 쓴다 생각하고 스페인에서의 기록을 적은 거예요.  Q.이제 그러면 다시 돌아가서 이제 퇴사 후에 7년 동안 해외에서 작가 생활과 여러 가지 활동들을 하시다가 다시 이제 한국으로 오셔서 2014년부터 허핑턴 포스트 코리아 편집 회사 대표가 되셨어요.이 두 가지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셨던 건가요? 손미나 작가.방송 앵커를 하다가 이거보다 좀 더 나는 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사회에서 이건 좀 아니다. 공부를 더 해야겠다'이런 필요성을 느껴서 저도 갔던 거고 비슷한 이유로 다 한 번씩 때려치우고 유학을 가서 공부를 하고 돌아와서 책을 쓴 그녀들이 각국에 있었고요.저희들이 세계를 무대로 하고 있는 역할 같은 거를 우리가 해주기를 기대하셨던 것 같아요.그래서 '어떻게 하면 더 대중들에게 좋은 뉴스를, 우리가 어떤 판단을 거기에 얹지 않은 상태에서 그 독자들이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잘 전달할 것인가, 어떻게 많이 바이럴 할 것인가, 어떻게 우리가 한국 사회에서만 있는 편견들을 깨고 세상에 뉴스를 접할 수 있도록 이 문을 좀 열어줄 것인가?' 이런 거에 대해서 여러 가지 다양한 활동들을 한 거죠.그 팀의 리더로서 그리고 이제 아리아나 허핑턴과의 핫라인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역할을 제가 했고요.그리고 손미나 컴퍼니는 제가 이제 해외 생활을 다 마치고 돌아왔을 때 한국이 진짜 많이 발전을 했는데 이상하게 행복하다 하는 사람들이 없어요.그래서 왜 이렇게 다 사람들이 직장도 더 좋아지고 연봉도 더 높아지고 좋은 차도 갖게 됐고 그런 상황에서도왜 사람들은 이렇게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덜할까 더 많은 거를 이룬 사람들일수록 더 불행하다고 이야기하는 그 어떤 자본주의의 부작용들이죠.사실은 어떻게 보면 이런 것들이 예전부터 이미 유럽이나 일본이나 많이 이야기가 나왔는데 우리나라도 그런 걸 겪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그래서 내가 나에 대한 어떤 정체성을 확실하게 파악하지 않으면 계속 사람이 헷갈릴 수 있거든요.'내 행복은 뭐지? 내가 생각하는 성공은 뭐지? 내가 생각하는 돈의 의미는 뭐지?' 이런 거에 대한 거를 자기가 확실히 기준이 없으면계속 다른 사람의 기준에 휘둘리면서 불행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어요.불행과 행복은 자기가 마음속에서 자기 스스로 만들어내는 감정이기 때문에 똑같은 상황에서도 다르게 느낄 수 있거든요.그래서 이런 것들에 대한 어떤 심리학적 철학적인 좋은 소스들을 가지고 만든 콘텐츠가 인생학교에 있고또 이런 것들이 또 어떻게 보면 여행하고 세상을 막 탐험해 나가는 이런 사람들 마인드에는 공통적으로 있을 것 같아서여행에 대한 어떤 프로젝트 하나와 인생학교와 이런 것들을 저희가 운영하기 위해서 손미나 컴퍼니를 제가 만들게 됐죠.  Q.사실 여태까지 해오셨던 일들이 다 이제 대중들과 커뮤니케이션하고 그들의 고민을 해결하는 멘토의 역할이 되게 많았잖아요.그것도 작가님이 의도하셔서 그쪽으로 계속 오신 건가요? 손미나 작가.어찌 보면 저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몰라요.그러니까 멘토 역할 그런 게 아니라 저는 사실 멘토라는 말이 참 쓰기 조심스러운 말 같아요.왜냐하면 제가 뭘 안다고 제가 뭐 인생에 대해서 뭘 누구한테 조언을 하겠어요.그거는 진짜 더 오래 살아봐야지 알 것 같고요.제가 스페인으로 유학을 갔을 때 그 비행기에 여러 번 갈아타고 갔을 때 저에 대해서 몰랐던 거 하나 발견을 하게 된 거예요.스페인 친구들이 저한테 그러더라고요.'야 너는 스페인어를 스페인 사람만큼 못하는데도 니가 무슨 얘기를 하면 너무 재밌어 너무 생생해. 뭘 보고 들은 얘기를 전해줄 때 그 현장에 가 있는 것 같아.'그래서 제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애들이 각자 얘기를 하다가도 다 이렇게 갑자기 군중이 돼서 듣고 있는 거예요.'아 내가 사람들에게 말하는 재주가 있구나' 그런 거를 느꼈고 또 역시 '내가 뭔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거에 대해서 굉장히 내가 즐거워하는 사람이구나' 사실은 저의 외국어가 굉장히 좋은 도구가 되어주는 거죠.세상을 보고 그것이 글이 됐든, 말이 됐든, 유튜브 내용이 됐든 계속 사람들에게 그 세상을 보여주고, 전달하고또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그러면서 조금이라도 우리가 더 행복하고 조금 더 세상이 나아지게 만드는 거 그게 제가 제일 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잘할 수 있는 일 같아요. Q.인생에서 이제 작가님의 인생을 좀 보면 카테고리를 나누면 대기업에서 거의 절반을 커리어를 쌓으셨어요.그리고 나서 절반은 또 이제 프리랜서 사업가로 활동을 하셨잖아요.제가 책이나 이런 인터뷰 등을 보면 굉장히 정신적인 이야기와 이런 경험적인 이야기도 많은데 이제 금전적인 그런 내용을 사실 잘 많이 안 담으신 것 같더라고요.혹시 금전적으로 좀 힘들었다거나 사업을 하다 보면 그럴 수 있으니까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으셨나요? 손미나 작가.당연히 있죠.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스페인으로 유학 갈 때 저는 통장을 다 비웠기 때문에 돌아와서 다시 또 일을 했고요.그런데 말씀드린 것처럼 돈에는 엄청난 함정이 있습니다.오늘 뉴스 보니까 엘론머스크가 세계 1위 주자로 등극했다고 하던데 그는 과연 만족할까요?저는 아닐 것 같아요.더 많이 갖고 싶을 거예요.돈은 아무리 나에게 넉넉하게 있어도 계속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줄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가 있어요.일단 첫 번째는 돈이라는 것이 갖고 있는 자기만의 함정 우리를 함정에 빠뜨리는 원래 그런 성향이 있고요.두 번째는 내가 진짜 뭘 원하는 사람인지 몰라서 그래요.예를 들면 나는 정말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인 거예요.그냥 걸으면 되는데 이웃집에서 누가 뭐 승진해가지고 자동차 회사에서 받았다 샀다 이러니까 괜히 막 비교되는 것 같아요.자기에 대해 확실하지 않아서 그런 거거든요.그래서 나는 이거는 확실히 나에게는 별로 필요 없어라고 하는 것들을 제외하고 나면 살 만해요.예를 들면은 저는 여자들이 보통 좋아하는 그런 옷이나 가방이나 이런 거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어요.그게 제 마음을 그렇게 행복하게 해주는 것 같지 않아요.그래서 그런 거에 대한 비용을 거의 쓰지 않기 때문에 어디서 이렇게 사은품으로 주는 에코백 이런 거 있죠?그거 들고 다니면 효율적이고 막 빨아서 그냥 세탁기 돌리면 되고 정말 누가 훔쳐가도 아무 문제 없고요.예를 들면 그런 거 그 대신에 저는 뭐는 꼭 해야 된다 이런 거 있을 수 있잖아요.예를 들면 나는 아무리 비싸도 라임은 꼭 사서 매일 하나씩 먹어야 되고, 책은 진짜 돈 아끼지 않고 사서 보고 싶고 이런 내가 꼭 해야 되는 것들과 아닌 것들에 대해서 확실하게 기준점을 두는 것이 좋아요. 그래서 거기에 초점을 맞추지 않다 보면은 다시 해결점이 생기고 그런 것 같아요.그리고 돈은 내가 쫓는다고 해서 많아지는 것 같지도 않더라고요. 사람마다 다를 텐데 최소한 돈을 제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살고 싶지는 않아요.Q.그럼 이제 돈을 목표로 한다고 하지 않으셨으니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우리나라 많은 사람들이 또 돈을 목표인 것처럼 많이 살아가잖아요. 작가님이 진짜 인생에서 추구하는 것들이 궁금해요. 손미나 작가.저는 지금 말씀하신 그런 분들이랑 저랑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게 뭐냐면그분들은 단지 돈을 목표로 산다기보다 돈 그 너머에 그 돈을 가지고 뭘 하고 싶은지를 생각해 봐야 된다는 것 자체를 생각을 안 해보셨을 수 있어요.그러니까 저도 돈을 많이 벌면 좋죠.돈을 버는 것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이 돈을 벌어서 어떻게 쓸 건가, 가치 있게 어떻게 쓸 건가 이거에 대해서 정말 생각을 해보시는 게 너무 중요할 것 같고요.그렇게 약간 관점을 딱 옮기는 순간 진짜 많은 게 달라질 거예요.올해 중국어를 배운다고 했잖아요.그러고 났더니 정말 내년도에 또 배우고 싶은 게 또 생겼어요.그래서 이 언어를 많이 배워가지고 이제 저의 노후 대책이기도 해요.그러니까 노후 대책이라는 게 굶어죽지도 말아야겠지만, 아파도 병원 갈 수 있고 이래야겠지만또 하나는 정말 내가 열정을 가지고 무슨 일을 계속할 수 있다면 진짜 그만한 노후 대책이 없는 것 같거든요.할 게 없고, 기다리는 일이 없고, 희망이 없어지면 그때부터 진짜 늙는 거고, 그때는 진짜 슬퍼지는 거라서 저는 계속 뭔가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이 외국어를 많이 배워서 아이들한테 가르쳐주고 싶어요.그러니까 혜택을 받지 못하는 환경에 있는 친구들이나 오지에 있는, 아니면 정말 가정이 어려워서 이런 외국어 교육을 받을 수 없는 그런 친구들한테 제가 다 가르쳐줄 수 있는 게 꿈이라서 이거를 하고 싶고, 나에게 많은 것이 주어져 있지 않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나 아니면 요즘에는 막 흙수저다 막 이런 얘기도 있고 되게 너무 청년들이나 이런 분들이 뭔가 기회를 잡는 것에 대해서 어려움들이 있잖아요.굉장히 사치스럽게 보일 수 있지만 언어를 하나 배워두시면 이거는 진짜 힘들 때마다 여러분을 일으켜주는 무기가 될 수 있을 겁니다.그리고 정말 정말 나에게 다른 어떤 물려받은 유산이 없다거나 뭐 다른 게 없다 이런 어떤 그 답답함을 느낄 수 있을 때, 어느 누구보다도 최고로 내가 갖출 수 있는 나의 자산이 언어고요.그런 의미에서 부모님들이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도 사실은 언어 교육인 것 같아요.전 KBS 아나운서, 여행 작가,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 교장,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인 등으로 많은 활동을 하시며 쌓은 경험으로 많은 특강(강연), MC 사회자 진행을 하시는 손미나 작가님은 기업 및 정부기관, 학교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강연 및 MC섭외가 궁금하시면?

  • 손미나 강사
  • 2023-08-25
강사추천 장동선 박사 강의 '미루기의 과학' 강연 특강

안녕하세요. 강사추천 강연자 섭외 전문기업 호오컨설팅입니다.이번에 소개해드릴 강연 영상은 장동선 박사님의 완벽해지려다 미루기만 하는 현대인들을 위한 솔루션 '미루기의 과학' 동기부여, 삶의자세 교육 특강 강연 영상을 준비했습니다.장동선 박사님은 과학, 뇌 과학, 뇌, 행복, 삶의지혜 등 다양한 분야의 강연 (특강)을 진행하고 계십니다. 안녕하세요 뇌과학 박사 장동선입니다.오늘은 아주 개인적인 주제를 갖고 왔는데요.바로 미루기의 뇌 과학입니다. 저는 사실 미루기 대마왕이에요.항상 하루 이틀 전까지 읽어야 되는 논문들이나 읽어야 되는 책들을 쌓아놓고 읽지를 않아요.꼭 마지막 순간에 몰아서 새벽 2시, 3시까지 읽고 잠을 잘 못자요.일주일 전에 읽었으면, 조금 더 시간을 놓고 했으면 이런 생각들을 하는 거죠. 아마 여러분도 익숙하실 것 같아요. 이러한 미루기가 일어나는 이유 중의 하나를요.뇌과학자들은 나의 뇌가 오늘의 나와 미래의 나를 똑같은 선상에 놓고 보는 게 아니라사실은 구분해서 볼 때 생겨나는 문제들 중의 하나로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죠.'오늘의 나는 모르겠지만 그냥 내일에 내가 더 잘할 거야.내일의 나를 믿기 때문에 모든 일들을 내일의 나에게 떠넘긴다.'참고로 정말 문제가 될 만큼 미루는 습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전 세계에서는 5명 중에 1명 이상이라고 하고요.뿐만 아니라 미루는 습관을 가진 사람의 경우가 중독에 더 취약하다는 사실도 아시나요?알코올 중독이건 마약 중독이건 이런 중독 증상으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하고 계속 중독 증상에 머물러 있을 확률이 높다라고 하는 연구도 있습니다.미루기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쉬기 위해 미루는 거고, 두 번째는 놀기 위해 미루는 겁니다.그런데 이 두 가지는 결과는 똑같이 미루기인데 사실은 그 뇌의 특징은 전혀 달라요. 쉬기 위해서 미루는 데는 어떤 특징을 갖고 있냐면 약간 에너지가 모자라고, '지금은 일단 쉴래 나 지금은 아무것도 하기 싫어'이 상태가 계속 지속이 되면서 뭔가 일을 시작하기가 어렵거나 그 일을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경우가 쉬기 위해서 미루는 케이스고요. 두 번째, 놀기 위해서 미루는 케이스는 좀 달라요.그러니까 이 케이스는 에너지가 넘쳐나는 거고요 시간도 있고, 일을 할 능력도 있고, 일을 할 만한 동기도 있고 충분히 다 많은데뭔가 딴 짓을 하고 싶어서, 딴 게 더 재미있어서 미뤄놓고 딴 걸 먼저 하는 케이스가 놀기 위해서 미루는 케이스입니다.저의 경우는 아주 솔직하게 말하면 놀기 위해 미루는 쪽입니다.내가 가지고 있는 미루기의 습관이 병적인 게 아닌가 생각해 봐야 되는 경우들이 있기는 해요.병적인 미루기라고 하는 케이스들은 파국의 효과가 오는데도 미루는 경우들이 있거든요.내가 일을 하고 나서 무슨 서류를 제출해야 돈을 받아요.그러면 주어진 때 안에 서류를 제출해야 돈을 받는 거니까 이거는 당연히 해야 되는 일이잖아요.이걸 계속 미루다가 돈을 못 받더라도 서류 제출을 안 하는 사람들. 또 다른 케이스는 내가 병이 있다라는 걸 아는데도 큰일이 나서 응급실에 실려갈 때까지 병원에 안 가는 거예요.이러한 케이스들의 경우에는 자기 파괴적인 결과가 나올 때까지 미룬다고 합니다.사실 치료가 필요한 거의 병적인 미루기라고도 할 수가 있는 거죠. 미루기의 패턴이 반복적으로 심각하게 나타나는 케이스들이 몇 개가 있는데,그중에 첫 번째 케이스는 adhd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 어떤 한 가지에 몰입하고 계속해서 이 일을 해내는 게 좀 어려워서자꾸 딴 일을 하고 당장 내 앞에 닥친 일들만 먼저 하는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그래서 adhd가 심하면 미루기는 항상 따라오는 케이스라고 볼 수가 있어요.그런데 이거랑 정반대로 쉬기 위해서 미룬다라고 했잖아요. 이게 좀 과하게 계속해서 쉬기만 하고 일을 시작도 못하는 경우에는 우울증 때문에 생겨나는 미루기의 패턴도 있어요.그러니까 내가 지금 심한 우울증이다 번아웃이 왔다 이런 종류의 문제를 갖고 있을 경우에도 계속해서 미루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미루게 되는 거는 자꾸 딴 일을 하고 끝내지 못해서 미루는 게 아니라,내가 에너지가 너무 다운돼 있어서 무언가를 할 만한 그러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시작도 못해서 생겨나는그러한 미루기의 폐해라고도 할 수가 있는 거죠.또 한 가지가 있는데요.불안장애의 경우에도 미루기의 습관이 잘 보이는 케이스 중 하나입니다.내가 어떤 일을 하고 완결을 지어야 되는데, 완결을 지었을 때 그 일에 대한 평가를 받는 게 무서워서 자꾸 미루게 되는 케이스입니다.그러니까 내가 안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지 않을까 결과물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너무 커져서어떠한 일 자체를 제출하지 못하는 경우가 불안장애 때문에 오게 되는 미루기의 경우라고 할 수가 있어요.그리고 이 세 가지랑 약간의 연관성이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인포스터 증후군 그러니까 감염 증후군이라고.그래서 내가 실제로 가지고 있는 능력을 자꾸 과소평가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보는 걸 거야.걱정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불안장애와 약간 엮여 있어서 계속해서 미루는 패턴이 많이 보입니다.의외로. 반대로 완벽주의자들의 경우에도 일을 끝내지 못하고 미루는 경우들이 많이 보이는데요.내가 일을 잘해내야 되는데 이걸 못하면 나는 루저야 나는 의미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이 경우에도 역시 평가에 대한 불안감이 되게 높아지고 계속 미루면서 일을 끝내지 못하는 패턴들이 보이는 케이스입니다.그래서 정리해보자면 정말 심하게 미루는 패턴이 계속 관찰이 된다.정신적인 문제 또는 요인들이 수반이 되기 때문에 미루기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라그 근본적인 문제들의 일종의 표출되는 하나의 증상일 뿐이다라고 볼 수 있는 케이스들도 있는 거죠. 일단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단계는 내가 나를 관찰해서 나의 문제를 정확하게 근본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고요.두 번째는 자기자비가 중요하다고 합니다.내가 너무나 자신에게 가혹한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고, 너무 미래의 나에 대해서 내가 기대를 과하게 건다든지,아니면 모든 걸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부담을 주는 건 아닌가,'내가 조금 더 나 자신에 대해서 친절하고 너그러워져야 미루는 습관을 고칠 수 있다'라고 하는 얘기도 하고 있습니다.그리고 세 번째로 중요한 것은 삶 속에 있어서의 환경과 습관을 제대로 정리하는 건데요.'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내가 딴 짓을 하도록 만드는 습관들을 없애고, 내가 미루지 않을 수 있도록 만드는 시스템들을 셋업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할 수가 있고요.제가 참고했던 책 중에는 게으른 완벽주의자를 위한 심리학이라는 책도 있고요.정리하는 뇌라는 책도 있고, 관련 논문도 몇 가지를 참고를 했습니다. 제가 가지게 됐던 솔루션 중에 제일 좋았던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그러니까 내가 무언가를 꼭 해야 된다라는 생각이 났을 때 이걸 5초 안에 그냥 실행해버리는 거예요.이거를 정말 극단적으로 잘 실행하셨던 레전드가 한 분이 있어요.이분이 가졌던 솔루션 중에 하나는 '당장 해버리자''떠오르는 대로 바로 실행을 해버리고 나면 미룰 게 안 남아 있으니까 안 미루겠지'라는그러한 실행 전략을 가지고 굉장히 성공적인 삶을 살았고, 많은 일들을 해내셨습니다.당장 해버리는 게 어려우면 이것도 도움이 많이 되는 게요.내가 해야 되는 일이 있으면 일이 보통은 많기도 하고 크기도 하잖아요.그래서 이것들을 조각조각조각 내가지고 조그만 조각들을 만들어 놓는 거예요.그러면 이 일을 다 하지는 않더라도 이 조각 하나만 해내면 되는 거죠.두꺼운 벽돌 책 같은 걸 읽어야 될 때 부담되잖아요.이거 언제 다 읽지? 그러면 딱 잡자마자 일단 잡았으니까 서문만 읽자라고 서문만 읽는 걸로 끝내요.그리고 그다음번에는 이들 점심 먹다가 이 책 읽어야 되는데 이러면 그 생각이 들었을 때 1장만 읽자라고 해서 1장을 읽어버려요.이거를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책 다 읽었네 이렇게 되기도 하더라고요.그래서 목표를 거대하게 잡기보다는 작게 잡고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해버리자.그다음에 내가 이걸 해냈을 때 얼마나 좋은 결과들을 놓을 수 있을 것인가 미래의 시나리오들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상상해보기요. 제가 미루기 습관 때문에 인생이 진짜 찐 망할 뻔한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사실 독일에 있을 때 제가 좀 일이 꼬였던 시기가 있었다라고 방송이나 이런 데서도 얘기를 좀 했었거든요.20대 때 미국에 교환학생 갔다가 박사 오퍼를 받고 엄청 좋은 일이 일어났죠.'당장 20대 박사가 될 수 있네! 미국 대학교에서 교수님이 나에게 기회를 주셨어.독일에 가서 얼른 해야 될 일을 끝내고 그리고 미국에 가서 박사 과정에 들어가야지'라고 하는 상황이었어요.그런데 그 과정에 있어서 갑자기 다 꼬였어요.독일에 돌아갔는데 저한테 그 학위 증서를 주셔야 되는 지도 교수님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학과에 문제가 생겨서저는 내 학비를 스스로 벌어야 돼서 알바를 3개씩이나 하고 그 과정에서 허리도 나가고 갑상선도 나가고 건강도 안 좋아지고뭔가 인생이 꼬이려면 다 꼬인다고 모든 일들이 꼬이는 그런 상황이 온 거예요.그래서 그 상황에서 결국은 제 계획대로 안 된다라는 게 자명해졌어요.'기회는 왔지만 나는 미국에 다시 돌아갈 수 없구나. 나는 저 오퍼를 받을 수가 없구나'그러다 보니까 무려 2년 반 동안 학교에서 이 과제 보고서만 내면 졸업을 하는 건데 이걸 2년 반 동안 미루고 졸업도 못하고모든 인생이 나락으로 갈 뻔한 상황을 자꾸 자초했습니다.어느 순간에는 아예 그냥 기숙사 방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벌레 나올 때까지 쓰레기도 안 버리고 그냥 이불만 뒤집어 쓰고그런데도 끝까지 그 과제 보고서는 못 하겠더라고요. 내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가를 보면서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마음의 변비가 생긴 상황이었다 라고 하는 걸 깨달으면서일단 그래도 끝낼 건 끝내야 그다음 스텝으로 정리하고 나아가서 새로운 시작을 할 수가 있는 건데그 한 걸음을 내딛는 게 너무 무서웠고 싫었고, 자존심 상했고, 나 자신에 대해서 자괴감이 들었고, 내가 원하던 길을 못 간다는 것에 대해서괴로웠던 상황 때문에 정말 끝까지 안 될 때까지 미뤘던 것 같아요.정말 그때를 돌이켜보면 인생 망할 수도 있는 병적인 미루기였던 것 같고요.그래서 이때 제가 하려고 하는 것 중에 하나는 '괜찮아 그거 하나 못한다고 사람들이 나 낙인 찍어가지고 루저라고 보지 않아. 뭐 하나 망해도 다시 더 잘하면 되지!이 실패 자체가 내 인생 전체를 나락으로 빠뜨리지는 않을 거야' 라는 형태로 조금 더 나 자신에게 친절해지려고 노력을 하고 있고요.이러한 어떤 완벽주의, 불안감, 실패에 대한 두려움 이러한 것들을 놓아주는 게 필요한 것 같고그냥 마칠 거는 잘하건 못하건 상관없이 일단 마치자라고 생각을 하는 게 좀 도움이 되더라고요.여러분 어떻게 생각하면 큰일 아니고 어떻게 생각하면 너무 큰일이에요.혹시나 미루는 것이 여러분을 너무나 힘들게 하고 있다면 그것을 잘 극복하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 장동선 강사
  • 2023-08-24
김익한 교수 강연 '챗 gpt시대, 생존의 방법' 특강

챗GPT의 등장은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일부 직업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논의는 여전히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이것을 너무 단순화해서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기술은 툴일 뿐,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됩니다. 따라서 챗GPT에 너무 의존하기보다는, 우리 스스로의 능력과 감성을 발휘하여 타인을 감동시키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요즘 많은 대학생들이 레포트 작성을 위해 챗GPT를 활용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기계가 레포트를 작성하면 그 내용이 풍부하고 정확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레포트는 진정한 학문적 탐구나 개인의 깊은 사유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정보의 추출과 이해는 다르며, 그 차이는 결과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예를 들어, "한국 현대 경제의 성격"이라는 주제로 레포트를 작성할 때, 챗GPT는 다양한 자료를 기반으로 균형있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주제를 깊게 탐구하려면, 인간의 감성, 경험, 그리고 사유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인간만의 특성은 어떠한 기술도 대체할 수 없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챗GPT는 우리의 일상 및 학문적 활동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습관, 연구 방법, 문학적 해석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정보와 자료를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챗GPT는 이러한 정보를 제공하는 도구로써, 우리는 그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생각과 견해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결국, 우리는 감성과 사유의 중요성을 이해하며, 동시에 챗GPT와 같은 기술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정보를 습득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본인만의 생각을 형성하는 것은 미래 사회에서 중요한 역량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챗GPT와 같은 기술이 제공하는 편리함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인간만의 독특한 가치와 감성을 계속해서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기억하셔야 할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만약에 사장님이 "챗GPT가 6시간 일하고 너는 2시간만 일하면 월급은 3분의 1만 주겠다"라고 했다면, 이러한 상황은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챗GPT가 나와 함께 업무를 처리할 때, 내가 수행한 일의 대부분을 함께 진행하게 되더라도 나는 원래의 일하는 시간에 대한 월급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노동의 대가와 관련된 문제로, 우리의 직업과 관련된 가치와 경험을 반영해야 합니다.챗GPT나 GPT와 같은 기술이 도입된 현대에서, 노동의 성과는 이 기술을 활용하는 우리의 능력과 그 결과에 기인합니다. 이는 자본 배분과 관련된 문제이며, 이 문제를 중심으로 채 GPT와 관련된 핵심 이슈들을 집중적으로 논의해야 합니다.​"정리의 기술"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는 '정리' 그 자체이고, 다른 하나는 '평가'입니다. 이를 영어로 표현한다면 'Arrangement'와 'Appraisal'이라는 용어로 표현됩니다. 'Appraisal'은 정보나 자료에서 가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고 선택하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가치 있는 정보나 자료만을 선별하게 됩니다.기록학에서는 기록의 보존과 폐기라는 개념을 다룹니다. 미국의 공공기록관리를 예로 들면, 만들어진 기록 중 3%만을 보존하고 나머지는 폐기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기록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전략으로, 중요한 정보만을 중심으로 기록을 관리하고 사용하겠다는 의미입니다.​습관에 대한 주제를 연구한다면, 키워드를 중심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그 정보들을 분류하거나 목록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얻어진 결과를 바탕으로 자신의 습관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SNS 활용에 대한 언급도 중요합니다. SNS를 통해 자신이 공부하거나 느낀 것을 공유하는 것은 지식의 소통과 공유를 위한 좋은 수단입니다. 또한, 블로그는 지식의 소통 채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느낀 점을 공유하면, 그것은 지식의 보물상자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마지막으로,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에서 이야기하는 '공동체 감각'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원시시대의 공동체 감각은 서로를 신뢰하고 돕기 위한 중요한 원칙이었습니다. 그 시대에는 생존하기 위해서는 그룹 내에서의 협력과 공동체 감각이 필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시사회에서는 개인의 이익보다 공동체의 이익을 더 중요시했습니다.​"미움받을 용기"에서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 중 하나로 개인주의의 과도한 확대를 지적합니다. 과도한 개인주의는 공동체의 파괴를 초래하며, 이로 인해 사람들 간의 관계가 불안정해집니다. 이 책에서는 공동체 감각의 재발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균형을 찾아야 함을 주장합니다.이러한 공동체 감각은 오늘날의 디지털 시대에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SNS와 같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물리적인 접촉이 줄어들면서 진정한 의미의 소통과 관계 구축이 어려워졌습니다. 따라서, 현대 사람들은 물리적, 정신적 공간에서의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블로그나 SNS를 활용하여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중요하나, 그것만이 소통의 전부는 아닙니다. 직접 대면하여 대화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를 쌓아갈 수 있습니다.​끝으로, 우리가 직면한 현대 사회의 문제와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감각과 진정한 의미의 소통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기술의 발전과 디지털화가 진행될수록, 인간적인 가치와 관계의 중요성을 더욱 깊게 되새겨봐야 할 것입니다.

  • 김익한 강사
  • 2023-08-23
mc섭외 김경란 아나운서 동기부여 특강 '악으로 버텨냈던 죽음의 스케줄' 강연 강의

안녕하세요. mc섭외 강연전문기업 호오컨설팅 입니다.이번에 소개해드릴 강연은 김경란 아나운서의 동기부여 특강 '악으로 버텨냈던 죽음의 스케줄' 영상을 준비했습니다.김경란 아나운서는 부산 mbc 아나운서를 시작으로 KBS 공채 아나운서로 KBS 뉴스라인, KBS2 스펀지, KBS1 열린음악회,KBS1 사랑의 리퀘스트 등여러 방송 프로그램 진행을 맡으며 쌓은 노하우로 강연, mc섭외로 행사 사회를 많이 진행 하십니다.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젊은 만큼 값진 재산이 없거든요.그래서 여러분께 오히려 응원을 정말 보내는 마음으로 제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을 해보겠습니다.저의 첫 직장은 여러분께서 kbs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4학년 2학기 때 우연히 시험을 보게 된 부산 mbc에서 시작을 했습니다.남아있는 학점은 있죠.그래서 그때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화요일 밤까지 저녁까지 근무를 하고밤 기차를 타고 서울에 와서 수요일 목요일 풀로 수업을 다 몰아듣고 목요일 밤 차를 타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서 금요일날 일을 하고요.제가 수,목 비운 대신 토,일 근무를 다 하면서 그렇게 6개월을 보냈어요.그 당시엔 ktx 없어서 새마을호 타고 다섯 시간씩 왔다 갔다 걸리면서 뭐 몸이 힘든 건 그럴 수 있다 쳐요.저는 배운 거 아무것도 없잖아요.그래서 맨날 퇴근하면서 보도국에서 그날의 뉴스를 이만큼씩 집어와요.한 2시간 좀 넘으면 이렇게 목이 쉬더라고요.그래서 목이 쉬어서 나오지 않을 때까지 읽다가 바로 옆으로 딱 쓰러져서 잠을 자고 정말 거의 매일같이 그런 생활을 했어요.그래도 뉴스 실력이 좀 나아지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 어떤 선배가 저한테 오더니 '경란아 너 어미에 조가 생긴 것 같아' 라는 얘기를 해요.이게 무슨 얘기냐면요.아나운서분들 뉴스하는 거 들어보다 보면 뭐 뭐 뭐 했습니다.이렇게 하는 약간 좀 자기만의 특성이 담긴 그런 버릇 같은 거 그거는 정말 고치기 어렵거든요.혼자 연습을 하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습관이 생겨버린 거예요.완전히 발등에 불 떨어진 거죠.그래서 그때부터 어미를 여러 버전으로 만들었어요.혼자 '그랬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랬습니다.'한 네다섯 개 만들어 놓고 녹음을 다 했어요.보는 선배님들마다 '선배님 이거 들어보세요. 1번 2번 3번 뭐가 나아요?''얼떨결에 3번이 나은 것 같아' 그러면 3번으로만 연습을 해갖고 '이거 중에는 뭐가 나아요?'계속 그거를 선배들을 볼 때마다 따라다니면서 계속 물어봤어요.나중에는 선배들이 '야 너 징하다. 너 좀 그만해라 제발' 또는 '넌 대단하다. 너 이제 고쳐진 거 같아' 라는 얘기를 들은 거예요.제가 그래서 그때 느꼈어요.정말 내가 고치고 싶은 거 있으면 마음 딱 먹고 죽어라 해보세요.죽어라 하면 그 노력이 부메랑처럼 나한테 다시 다가와서 나에게 정말 가슴 뛰는 기회를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아요.그렇게 부산 mbc에서 치열하게 1년을 보냈어요.그러다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사람마다 추구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용의 꼬리가 될 것이냐 아니면 뱀의 머리가 될 것이냐 저는 그 생각이 들더라고요.뱀의 머리가 되는 것보다 용의 꼬리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1년 동안의 부산 mbc의 값진 경험을 간직한 채 서울로 와서 kbs에 들어오게 됐어요.세상에 여러 복이 있는데 저에게 참 유달리 가득 와서 안기는 게 이제 일복이에요.오늘 끝나면 내일, 내일 끝나면 모레, 모레 끝나면 글피, 정말 이렇게 제가 2002년 말부터 뉴스 라인에 들어가게 됐어요.뉴스 라인이라는 프로그램이 밤 11시 프로그램이고 그러다 보니까 심층 뉴스 프로그램이라 지금까지 10년 이상 된 베테랑 선배들이 하셨거든요.근데 입사 2년 차인 저한테 덜컥 하라는 거예요.그런데 그때 스케줄을 생각하면 어땠냐면 오후에 출근을 합니다.출근을 하자마자 제가 그때 밤 12시부터 2시까지 하는 음악 fm의 라디오 dj까지 하고 있었어요.그러니까 주말 거 녹음을 해요. 그러고 이제 그 녹음을 마치고 막 불이나게 와서 뉴스를 하고 끝나고 라디오 생방에 들어가요.그러면 새벽 2시에 끝나요. 그다음에 개편이 되면서 새벽 6시로 뉴스를 옮기래요.새벽 2시에 제 업무가 끝났었잖아요.뉴스 광장은 새벽 2시 반에 기상을 해요.막 시차가 엉클어지면서 뉴스를 하기 시작했어요.그때 참고로 제가 뉴스 광장을 하면서 열린 음악회, 스펀지, 영화 탐험 등 프로그램을 다 하고 있었어요.정말 그렇게 힘든 스케줄을 감당을 하다 보니까 위경련이 난 거예요.너무 고통스러운데 이걸 안 하면 안 되니까요.꾹 참고 '누구 기자의 보도입니다.' 이러고 딱 화면에 넘어가면 거기만 거의 오바이트가 나올락 말락하면서 막 고통스럽게 누워 있다가저쪽에서 이제 'kbs 뉴스 누굽니다' 하면은 벌떡 일어나서 다음 뉴스를 진행하고 그런 식으로 버티면서 진짜 악바리처럼 버텼었어요.'정말 남은 게 깡밖에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완벽을 기하고 순간에 최선을 다하려고 했던 저지만 저도 사람이잖아요.그 방송 실수를 제가 심야 근무를 할 때 일어났어요.9시 57분에 전화 한 통이 왔어요.사람이 안 왔다는 거예요.정말 머릿속이 노래지면서 가까운 거리가 아니라 전력 질주를 하면서도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하면서 전력 질주를 한 거예요.그래서 갔더니 이제 다들 우려스러운 얼굴로 다 모여 있는 거예요.그래서 뉴스 원고를 가로채고 앉았어요.한 20초 남았더라고요.정말 그때부터 세상에 앞으로 5분이 남았는데 저는 거의 숨이 찬 게 아니라 우는 것과 부르짖는 것의 중간이어서 정말 우여곡절 끝에'나 지금도 어지럽다' 생각하니까 4분까지 갔어요.그럼 보통 4분 한 20초쯤에 날씨를 들어가요.날씨를 읽으면서 훗날 지금 이제 앞으로 벌어질 이 일련의 사태에 대해서 생각을 하는 거예요.'전국으로 나의 이 부르짖는 울부짖는 소리가 방송이 됐는데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은가' 저에게 갑자기 묘책이 떠올랐어요.끝에 어떤 식으로 사인을 하냐면 'kbs 제1라디오 10시 뉴스를 마칩니다. 지금까지 김경란이었습니다. 지금 시각은 10시 5분입니다.'이렇게 하는데 때로는 시간에 따라서 조율이 가능하거든요.'지금까지 김경란이었습니다'를 빼자. 적어도 일단은 전 국민이 나인 거는 나중에 이제 책임 소재는 묻겠지만 일단 그거만 빼자'그리고 'kbs 제1라디오 10시 뉴스를 마칩니다' 해야 되는데 kbs 정말 다 빼고 '지금까지 김경란이었습니다'만 했습니다.그래서 엄청난 경위서와 여러 군데 불려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 꿈은 아나운서였는데요.초반엔 그래서 열심히 했어요. 진짜 누가 뭐래도 열심히 했어요.어느 순간 내 스스로 배터리가 방전된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난 이제 뭘 보고 달려가야 되지? 더 이상 내 마음에 가슴 뛰는 설렘이 없었어'그러던 와중에 운명 같은 전화 한 통이 걸려옵니다.그게 바로 제가 진행하고 있던 kbs 사랑의 리퀘스트라는 프로그램에 아이티를 갈 수 있겠냐는 전화가 왔어요.그때 제가 데일리 프로그램을 했던 게 클래식 fm이었거든요.피디 선배가 우연치 않게 제 옆에 있었던 거예요.'선배님 제가요 지금 아이티에 출장을 갈 수 있냐는 전화를 받았는데요. 아무래도 어렵겠죠?''출장인데 가야지' 이러시는 거예요.당시에 아이티는 지진 난 지 한 달 됐어요.그 국경을 딱 지나자마자 믿어지지 않는 세계가 제 눈에 펼쳐졌어요.모든 게 다 회색이었어요.나무도 회색이고, 길도 회색이고, 물도 회색이에요.진짜 믿어지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다 말문이 막혔어요.'그렇게 it에서 뭘 할 수 있을까?'일단은 모자 가정에 가서 첫날은 텐트를 쳐줬는데 잘 곳이 생겼다고 되게 좋아했어요.다음 날 한 게 급식이었어요.아주 꼬맹이 세 네 살짜리가 숟가락 막 휘청거리면서 막 이러면서 먹고 있는 거예요.그래서 '에휴 내가 도와줘야겠다' 싶어서 가고 얼른 그 숟가락을 이렇게 집어가지고 얼른 먹여줬어요.근데 그 순간 이 아이의 눈빛이 정말 막 도끼 어린 눈빛으로 변하더니 절대 뺏기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그걸 쥐고 막 그 숟가락을 막 뺏는 거예요.자기 음식 뺏어갈까 봐요.저 쪽 보니까 또 비슷한 애가 막 또 휘청거리면서 막 먹고 있는 거예요.그래서 얘는 어떻게 할까 한 번 노하우가 있잖아요.살짝 숟가락을 빼고 재빨리 입에다 넣어줬어요.그랬더니 애가 눈이 동그래서 나를 이렇게 보더니 입을 아 벌려서 제 숟가락을 받아 먹는 거예요.그래서 두 번째도 이렇게 줬어요.그랬더니 얘가 갑자기 손을 이렇게 미루면서 저 먹으라고 해요.근데 그 숟가락은 침범벅에 모든 게 다 이제 뒤섞여 있는 상황이긴 했어요.그 눈빛을 아마 여러분도 봤어도 먹었을 거예요.진짜 맛있게 먹었어요.  내가 앞으로 살아야 할 삶이 뭘까 그런 것들을 막 고민하고 있는데 리퀘스트에 어느 날 김혜자 선생님이 출연을 하셨어요.그분께서 10년 전에 아프리카의 한 나라에 염소를 선물해 주고 오셨어요.근데 그 염소를 선물해줬던 그 가정에 10년 후에 찾아가신 거예요.10년 전 염소를 주고 갔던 김혜자 선생님을 기억해요.그러고 김혜자 선생님을 붙들고 안고 '당신이 주고 간 염소 때문에 우리 가정이 살 수 있었고 이 아이가 공부를 할 수 있었고 이 아이가 결혼을 했다'그러면서 진심으로 고마워하더라고요.그런데 그 화면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김혜자 선생님한테 그 말씀을 드렸어요.'선생님, 저도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그랬더니 김혜자 선생님이 단호하게 한 말씀 하셨어요.'경란 씨 분야에서 최고가 돼야만 사람들이 경란 씨의 말에 귀를 기울여줘.'그때부터 제가 진짜 바뀌었어요.'그래 내가 진짜 가치 있게 생각하는 그 삶. 나로 인해 누군가가 행복해질 수 있는 삶.그런 삶을 위해서 내 울타리를 포기한다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주변에서 독설 엄청 했어요.'너 이 울타리 방 나가면 넌 그냥 똑같은 방송인일 뿐이야''너 언제까지 네가 사람들이 너를 기억해 줄 거라고 생각해? 너 당장 안 써버리면 끝이야' 정말 독설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희한하게 제 마음에 딱 뿌리가 서니까요.어떤 독설, 어떤 단단한 바위가 저를 막 들어쳐서 깨도 전혀 흔들리지가 않았어요.그래서 2012년 9월에 결심을 하고 퇴사를 했습니다.전 확신이 있었어요.내 삶은 그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않고 그리고 내가 정말 가치 있다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에게는 가장 가치 있는 거라고그 누구도 제가 퇴사를 결심했다라는 얘기에 이렇게 박수를 쳐주지 않았었어요.근데 여기 와서 여러분께서 박수를 쳐주시니까 아 내가 정말 잘못 판단한 것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에 감사해서 눈물이 났습니다.사람마다 가치는 다 달라요.중요한 건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가 그것에는 시간을 충분히 할애해도 괜찮으니까요.여러분의 시간 정말 잘 할애하셔서 내가 정말 가치 있다라고 여기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를 빨리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 강사
  • 2023-08-23
명사특강 권수영 교수 강연 '미치도록 화가나는 이유' 특강

우리는 관계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서양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관계 중독'이라고 말해요. 그들은 관계 때문에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럼,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는 행복한 사람일까요, 아니면 불안한 사람일까요?​요즘에는 '착한 아이 증후군'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요. 착한 아이란, 감정 표현을 잘 안 하는 아이를 말해요. 그런데, 이런 아이들이 나중에는 불안한 아이가 될 수 있어요. 왜냐하면, 그들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계속 절제하기 때문이죠.분노 감정은 사실 악한 감정이 아니에요. 분노는 내면의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지표입니다. 주전자의 뚜껑이 열릴 때, 우리는 주전자 안을 들여다봐야 해요. 그 안에는 관계의 욕구와 그에 따른 감정이 있을 테니까요.예를 들어, 아내가 남편을 위해 고추장찌개를 끓였다고 생각해봐요. 그런데 남편이 일찍 들어오지 않아요. 아내는 분노감정을 느낄 수 있어요. 그런데 그 분노 감정 뒤에는 '남편과의 좋은 관계'라는 욕구가 있을 것이고, 그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서 분노감정이 생긴 거죠.​우리 딸이 중학교 때 있었던 일을 얘기해볼게요. 딸이 수학 문제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봐도 제가 그 문제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이 문제는 정말 어려워"라고 말했죠. 그런데 딸이 "아빠, 그냥 알려주세요"라고 계속 부탁했어요. 내가 정말로 모르겠다고 말하니, 딸이 등을 돌려버렸어요. 그 순간, 제 뚜껑이 확 열렸죠. 왜냐하면 그날 오전에 학생이 질문을 했을 때, 제 설명에 만족하지 않고 그냥 나가버린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에요.그런데, 그 학생이 나가면서 다른 학생들이 웃었어요. 그 순간, 제가 너무 창피했어요. 그래서 집에 왔을 때, 딸의 말에 너무 화가 났던 것 같아요. 그런데 딸이 말했어요. "아빠, 그렇게 화를 내실 일은 아니에요." 그 말을 듣고, 제가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깊이 생각해보았어요.결국, 제가 그날 학생들 앞에서 창피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딸의 말에 더 화가 났던 것 같아요. 그래서 딸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얘기해줬어요. 그랬더니 딸이 이해해주었고, 우리는 그 문제를 함께 풀어보기로 했어요.​이렇게 보면, 분노 감정은 나쁜 감정이 아니에요. 분노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려고 하는 감정이죠. 그 메시지를 잘 파악하고, 그에 따라 대응하면 관계도 더 좋아질 수 있어요.​분노를 참는 것, 그리고 참아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해요. 분노 감정은 원심력 감정이에요. 상대방에 대한 관계 욕구가 무너져서 생기는 감정이죠. 그런데, 이 관계 욕구나 상대방에 대한 바람을 상대방에게 잘 표현하면, 우리의 관계는 더 강해질 수 있어요. 상대방과의 연대감, 그것이 바로 중요한 거죠.우리 딸이 얘기했던 것처럼, 상대방과의 연대감을 느끼려면, 분노의 뚜껑을 열어서 그 안에 있는 소프트한 감정을 찾아내야 해요. 상대방이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 내가 상대방에게 어떤 욕구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욕구가 무너졌을 때 내 안에서 어떤 감정이 생기는지... 이런 것들을 상대방과 나누면, 우리는 더 행복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요.​분노 감정 뿐만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함께 느끼면서, 우리는 행복한 한국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여러분이 그런 행복한 관계와 연대감을 느끼며 살아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 권수영 강사
  • 2023-08-22
최태성 강사가 전하는 '최악의 매국노' 인문학 강의

당시의 한국은 국가적 위기의 시기였습니다. 1910년, 일제의 침략으로 국가의 주권을 상실했던 그 때, 이와 연결된 다양한 사건과 인물들이 우리 앞에 펼쳐졌습니다. 이 중에 두 명의 주요 인물, 이완용과 이석영의 행보와 그들의 선택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1910년, 우리나라의 국운이 침몰하던 그 시기, 이완용은 주목받는 인물로 등장했습니다. 그는 나라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그 기회를 이용해 땅을 사고 팔며 큰 재산을 모았습니다. 그의 부유함은 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고, 그는 그만큼 화려한 장례식을 가졌습니다. 특히 그는 전라도 지역의 곡창지대 땅을 대량으로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는 그의 재력을 대표하는 부분 중 하나였습니다.이완용은 세 번의 큰 사건, 즉 을사늑약, 정미실조약, 경솔국치에 모두 관여했습니다. 이 세 사건은 우리나라의 주권 상실로 이어졌고, 그 중심에 이완용이 있었습니다. 특히 그는 일본으로부터 큰 금액의 하사금을 받아, 현재 가치로는 수십억원에 달하는 재산을 축적했습니다. 그의 부를 통한 투자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부동산 투자였습니다.​반면, 이석영은 그와는 완전히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그는 가족과 함께 그 시기에 갖고 있던 땅을 팔았습니다. 이석영의 선택은 그의 경제적 상황이나 가족의 배경만으로는 설명되기 어렵습니다. 그의 집안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명망이 높았던 집안 중 하나였으며, 그들은 땅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그의 집안은 남양주에서 동대문까지 이르는 광대한 지역의 땅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그 가치는 현재로서 수조원에 이릅니다.이렇게 서로 다른 선택을 한 두 사람, 이완용과 이석영. 그들의 선택 뒤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요? 이석영과 그의 형제들은 그 시기에 회의를 가졌습니다. 그들은 당시의 국가적 위기를 직시하며, 자신들의 재산과 미래에 대해 깊게 생각했을 것입니다.​결론적으로, 1910년의 국가적 위기 속에서 이완용과 이석영, 이 두 사람의 선택은 그들의 가치관과 생각, 그리고 그 시대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인물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현재의 시대를 살아가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어떤 가치관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그런 집안에서 회의를 개최하게 되었을 때 주요 주제는 바로 그들의 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고찰이었다. 그들은 회의에서 주로 다음과 같은 주제에 대해 논의하였습니다."우리 가족이 지금까지 이런 존경받는 위치에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은 분명했다. 그것은 바로 나라의 존재였다. 그 나라 덕분에 우리 가족은 풍족하게 살아올 수 있었으며, 그 나라가 지금은 망하게 된 것을 인식하였다.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인 그들은, "우리는 이제부터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했다.​결국, 그들의 결론은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었다. 이석영은 그 결정을 실천하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재산을 모두 팔기로 결정하였다. 그 후, 그들은 만주로 이동하여 새로운 땅을 구매하였고, 그 땅에서는 학교를 설립하였다. 그 학교는 무상 교육을 제공하면서,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이 학교는 시간이 흘러 신흥무관학교로 발전하게 되었고, 이 학교의 출신들은 1920년대부터 독립운동의 선봉에 서게 되었다.​그런데 이석영의 생애 마지막은 무척 슬프다. 그는 1934년에 아사, 즉 굶어서 사망하게 되었다. 이러한 끔찍한 죽음을 당한 이유는 일제의 감시와 압박 때문이었다. 일제는 이석영을 끊임없이 감시하였고, 그로 인해 그는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인한 건강 악화를 겪게 되었다.이렇게 국가의 위기 상황에서 사람들은 각기 다른 선택을 했다. 일부는 땅을 구매하는 것을 선택했으며, 일부는 땅을 팔기를 선택했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도 그 부를 창출해낸 사람들의 죽음은 굉장히 트라우마로 남았다.​이석영처럼 땅을 판 사람은 굶어서 죽는 가슴 아픈 죽음을 맞게 되었다. 반면, 땅을 팔아 먹는 부유한 생활을 이어갔던 이완용은 어떤 존재였을까? 이완용의 무덤은 현재 불명이다. 1926년에 그가 죽었을 때, 동아일보에 나온 사설은 그의 죽음을 비난하였다.그 사설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완용은 일본, 돈, 권력의 보호 아래에서 살았지만, 그는 결국 죽음 앞에서는 피할 수 없었다. 그는 이제 역사의 법정 앞에 섰다." 이와 같은 현실은 일제 그림자처럼 깔린 역사의 틈에서, 우리가 여태까지 알아보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존재합니다. 한때 굴지의 집안에서 이루어진 한 회의, 그 회의에서의 논의는 우리 민족의 아픔과 희망, 그리고 미래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렇게 존경받고 잘 살아온 이유는 무엇인가?" 그 대답은 바로, 우리의 나라, 그 토대 위에서였다.​우리의 역사는 단순히 패배와 굴복의 연속이 아닙니다. 이석영과 같은 독립운동가들의 불굴의 의지와 희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걸고 나라를 지키려 했습니다. 그들의 결정은 우리 민족의 아픔을 공유하며,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민족의 독립을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이석영의 삶과 그의 결정들을 통해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현실의 어려움과 도전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믿음과 원칙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입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가치이며, 우리 사회와 민족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적 사실입니다.이완용과 같은 배신자들은 잠시의 권력과 부를 위해 나라를 팔았지만, 그들의 행적은 결국 오랜 시간 동안 우리 민족의 기억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석영처럼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은 시간이 흘러도 민족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존경받는 인물로 남게 되었습니다.​결론적으로, 역사를 통해 우리는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노력을 기억하며, 그들의 정신을 계승해 나가는 것이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이석영의 삶을 통해 보여진 민족의 의지와 투쟁정신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중요한 가르침을 줍니다. 우리는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 최태성 강사
  • 2023-08-21
스피치 특강 아나운서 우지은 대표 강의 '100%목소리 좋아지는법, 특급노하우' 강연 특강

안녕하세요. 강사추천 강연자 섭외 전문기업 호오컨설팅입니다.이번에 소개해드릴 강연 영상은 아나운서 우지은 대표님의 스피치 교육 특강 강연 영상을 준비했습니다.아나운서 우지은 대표님은 국내 최고의 보이스&스피치 컨설턴트이자 스피치 교육 회사 대표로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소통, 프레젠테이션, 신입사원교육, CS, 면접 스피치 등 등 다양한 분야의 강연 (특강)을 진행하고 계십니다.  오늘은 보이스 트레이닝의 정석의 핵심인 마스크 공명 발성법을 다뤄보겠습니다. 사람의 목소리가 180도로 변화하는 그 비밀이 바로 마스크 공명 발성에 숨어 있다면 여러분 믿으시겠습니까? 제 목소리도 공명 발성을 훈련한 이후에 훨씬 목소리 톤이 안정이 되고 울림이 생겼고요.장시간 큰 목소리로 강의를 해도 지금은 절대 목이 아프거나 쉬지를 않습니다.너무나 신기하죠?확실히 건강한 소리를 내는 방법이 있습니다.그걸 오늘 여러분께 아낌없이 다 알려드릴게요.연기자나 혹은 주변 사람들 중에서 목소리가 좋은 사람을 한번 떠올려보세요.그들의 목소리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 목소리 톤이 안정적인 중저음이라는 점이고요.또 둘째는 목소리에 풍성한 울림이 실려 있다는 점입니다.낮고 부드러운 울림이 실린 목소리는 상대방에게 어떤 느낌을 전해줄까요?일단은 편안함, 신뢰감, 그리고 호감을 전하게 됩니다.누구나 훈련을 하면 안정적인 목소리를 만들 수가 있고 또 울림이 풍성하게 실린 매력적인 목소리의 소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그런데 여러분 방법은 의외로 너무나 간단합니다.지난 시간에 우리 하품하듯이 아치를 크게 벌렸었죠.그 느낌을 기억하시면서 이렇게 해보는 겁니다. 함 아치를 크게 벌리면서 함 하면 어떻습니까?입술은 가볍게 다문 상태가 되고 그리고 위아래 어금니는 뗀 상태가 되고요.입안에는 동그란 공간이 생겼을 거예요.복식 호흡을 하고 공기를 입안에 동글게 머금은 상태로 함하면서 이 빈 공간을 울려보겠습니다.이렇게 허밍을 하시는 거예요. 하아아암 이때 목 안쪽에서 공기가 울리는 것이 아니라 코와 입 주변 마스크 주변에서 부드럽게 울리는 것이 중요합니다.가볍게 코와 뺨 주위에 손바닥을 대고서 허밍을 반복해 보세요.마스크 주변의 풍성한 울림이 손끝으로 느껴지시죠?복식 호흡을 하면서 아랫배가 자연스럽게 쑥쑥 들어가면서 함을 통해서 나오는 소리.이 목소리 톤이 바로 자신의 타고난 발성 구조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안정된 목소리 톤입니다.다소 낮은 소리죠?이 상태에서 조금 높아지는 건 괜찮지만 목소리 톤이 확 올라가거나 확 낮아지면 성대 주변 근육을 누르면서 소리가 경직되게 되고듣기 싫은 소리가 만들어집니다.그래서 자신의 최적의 목소리 톤을 찾고 이 톤을 잘 유지하면서 말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마스크 전체의 울림을 느끼셨다면 이번엔 공기를 인중 쪽으로 모으는 훈련을 해볼게요.처음의 소리는 안녕하세요 확 퍼지는 소리였다면, 두 번째 소리는 안녕하세요 이렇게 모아지는 소리였죠.훨씬 더 명료하고 맑고 귀에 잘 들렸을 겁니다.이처럼 소리를 모아주는 훈련이 필요한데요.공기가 윗입술과 앞니 즉 인중 부근에 모아진다고 생각하면서 이 부분에 떨림에 집중해 보시는 겁니다.공중에서 확 퍼져버리는 소리가 아니라 심지가 있는 것처럼 또렷하게 모이면서 맑게 울리는 소리는 바로 이 지점 인중 부근에서 만들어집니다.아주 아주 중요한 포인트 좋은 목소리를 만드는 비밀을 여러분께 지금 알려드리고 있습니다.이제 인중 부근에 집중된 소리가 입 밖으로 시원하게 뻗어나갈 차례입니다.부드러우면서도 멀리까지 잘 전달되는 소리를 위해서는 발성을 할 때 포물선을 상상하면 도움이 되는데요.인중에서 튀어나온 소리가 둥글고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면서 멀리 나아가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허밍을 하다가 입을 벌려서 하고 소리를 내보내는 겁니다.함 할 때 목소리에 안정된 톤과 울림이 발성으로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 핵심이에요.특히 할 때 입술에서 공기가 텅 하고 탄력 있게 튕겨나가는 느낌을 느껴보세요.다 같이 한번 해볼까요?또 이런 훈련 방법도 있습니다.울림을 더욱더 풍성하게 실어주는 방법인데요. 여기까지만 훈련을 해도 여러분의 소리가 안정적인 중저음으로 변하면서 소리에 풍성한 울림이 실리는 게 느껴지시죠?아주 간단한 방법인데 이게 바로 보이스 트레이닝의 핵심입니다.다양한 훈련법으로 목소리 누구나 바꿀 수 있습니다. 우지은 대표님은 명사특강 및 관공서, 대학 등에서 기업강사, 추천강사로 많은 강연을 진행해오셨습니다.우지은 대표님과 많은 스피치 교육 강연자 섭외가 궁금하시면??

  • 우지은 강사
  • 2023-08-17
문성후 박사 '리더의 덕목' 리더십 강의

"우리의 삶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선택은 바로 '태도'의 선택입니다. 태도는 단순히 우리의 일시적인 생각이나 감정을 넘어서, 우리의 행동, 습관, 그리고 전체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요소입니다."​성공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이 '태도'에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습관의 주인으로서 자신의 습관을 통제하고, 그 습관을 통해 원하는 결과를 얻어냅니다.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습관에 휘둘리며 원하지 않는 결과를 얻게 됩니다. 이러한 차이는 모두 '태도'에서 시작됩니다.리더에게 있어서는 이 태도의 중요성이 더욱 커집니다. 리더의 태도는 그의 팀과 조직의 문화, 분위기, 그리고 전체적인 성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리더가 만족하고 멈추면, 그의 조직도 그대로 멈춰버립니다. 이런 이유로 리더는 항상 갈망하며, 새로운 것을 배우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동기부여를 찾아야 합니다.리더의 태도 중에서도 특히 '충직'이라는 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충직은 단순히 충성이나 정직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리더가 그의 팀과 조직에 대해 얼마나 충실하고 정직한지, 그리고 그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헌신을 기울이는지를 나타냅니다.​마지막으로, 리더는 항상 자신의 태도를 점검하며, 그 태도가 어떻게 그의 팀과 조직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리더의 태도가 팀과 조직의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리더는 그의 태도를 통해 팀과 조직의 방향성을 제시하며, 그들을 더 나은 미래로 이끌어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리더의 진정한 책임과 역할입니다.정리하면? ​🌟 "리더가 선택하는 태도에 따라 조직의 운명과 성과도 결정된다." 리더의 태도는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며, 우리의 행동은 우리의 운명을 형성하는 습관이 된다.​😎 태도는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며, 우리의 행동은 우리의 운명을 형성하는 습관이 된다.​😜 리더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충성심이지만, 무조건적인 충성심과는 달라야 한다. 충실하고, 정직하며,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태도를 포함해야 한다.​🌍 성공적인 회사의 핵심은 항상 고객의 문제와 우려를 해결하려는 노력이다.​🌟 리더에게 중요한 태도는 성장에 대한 갈망과 지속적인 허기다. 만족과 자만심은 조직의 진보를 방해할 수 있다.​🌊 기술의 급속한 변화, 예를 들면 메타버스의 등장,은 리더가 조직이나 회사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그 원칙을 빠르게 적응하고 배우도록 요구한다.​🚀 빌 게이츠는 자원봉사 재단의 의장으로 일하면서도 백신과 같은 중요한 원인을 화성에 로켓을 쏘는 개인적인 노력보다 우선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능동적인 추종자가 되는 것은 리더의 아이디어와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며, 비판적 사고 없이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다."

  • 문성후 강사
  • 2023-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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